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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존재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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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철목사 댓글 1건 조회 5,657회 작성일 08-08-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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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면 6차례 정도의 어린이 캠프를 진행한다. 주로 멀티미디어라고 하는 교육자료를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성경을 쉽고도 재미있게 교육하는 캠프인데 이 캠프를 돕기 위하여 매년 많은 자원봉사들이 와서 함께 섬긴다. 어떤 가정은 아예 여름의 2주간 정도를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섬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중학생 자원봉사자 가운데 2명을 통해서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 이틀 자원봉사자로 잘 섬기던 이 학생들이 아주 심각하게 아내에게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상담의 내용은 바로 자신들은 이곳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자원봉사자로 섬기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 대하여 그들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 한명은 자신이 찬양단 싱어로 섬기고 싶다고 하였고 또 한명은 자신이 율동으로 섬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 집회때마다 앞에서 찬양하고 율동하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는 가장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요구는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중 율동을 하겠다는 학생은 지난 몇 년간을 자원봉사로 섬겼는데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이 율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감을 위하여는 자신이 가장 어려워하는 율동이라고 배워서 서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서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가지는 존재감에 대한 관심도가 얼마나 큰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전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하여 우리 교회아이들이 교회별 발표에서 1등을 한적이 있었다. 4명의 여학생이 멋진 찬양율동으로 1등을 하였고 그 찬양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시상식때 다시 한번 공연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중에 한명은 둘쨋날 저녁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돌아가게 되었는데 다음날 날아온 문자의 내용은 시상식때에 자신이 빠지고 율동을 한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냐의 의미로 나의 존재감이 있었냐고 묻는 문자 였다고 한다.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의 존재감이 어떠하냐에 대한 관심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종 TV를 보다보면 유명한 정치인 곁에 함께 걸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카메라에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억지로 또는 분에 넘치는 말과 행동으로 주목을 받으려는 스타들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존재감을 가지는 스타들에 대하여 청소년들은 사랑을 보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들의 문화를 보면서 성경속에서 진짜 존재감이 없었던 사람 다윗을 생각해 보았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새의 집에서 한 사람을 기름붇기 위하여 찾아 갔을 때 8번째 아들인 다윗의 존재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윗의 아들 7명이 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지 못하였지만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아예 자신의 아들들을 부르는데 끼워주지도 않았고 나중에도 그 아이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사무엘에게 말할 정도로 다윗의 존재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요셉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그 가족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가졌지만 형들의 미움으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고 애굽이라는 나라속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었다. 그는 수 많은 노예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였다. 그는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감옥에 갇혀야 하는 억울함을 당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이새는 그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양을 치고 있던 다윗을 불러오게 하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그를 사울을 이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주셨다. 요셉 역시도 하나님앞에서는 그 존재감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에 항상 함께 하셨고 요셉이 처한 모든 상황속에서 요셉을 도우셨으며 결국 그를 높여서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심으로 참된 존재감을 갖도록 해 주셨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는 달리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날마다 사람들 앞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감을 자신의 아들에게 이어주기 위하여 평생을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열중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 자체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앞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일은 그다지 현명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감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정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영적인 민감성을 날마다 가지고 살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 세울까를 고민하는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존재감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게 하고 다윗이나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존재감을 갖는 사람들이 되게 한다면 우리는 이 사회를 바르게 세워갈 미래의 진정한 지도자들을 얻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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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님의 댓글

존재 작성일

  나역시 그랬던것은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감은 하나님이 보시는 방법과 얼마나 다른건지, 다시 한번 깨닫게되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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