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대 임종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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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종건 작성일09-01-03 12:10 조회4,4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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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냥 들어와봤는데, 예쁜 홈피네요^^
구경 잘하고 갑니다. 과제도 올리고 갈게요^^
사실 평소에 입양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고신대에 입학한 이래로 주구장창 들어왔던 황수섭 목사님의 ‘입양 이야기’는 내게 특별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저 그것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감동적이고 좋은 이야기로 들려오기는 했지만 ‘남의 이야기’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황목사님의 두 아들 대한이, 민국이도 내게는 그저 남의 집 쌍둥이 아들일 뿐이고, 단지 좋은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로써 공감하면 그만이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입양되고 있다고 했지만, 남의 집 아이들일 뿐이었고, 어느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직 나는 자식을 가질 나이가 아니어서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러한 생각은 이 방송을 보게 되면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나는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는 그런 구경꾼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현실을 도피하고, 피하면서 구차하게 변명만 늘어놓는 그러한 나약한 구경꾼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에 숨어서 지켜만 보다가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빴던 베드로의 모습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엘렌 가족 이야기, 그 후 8년을 보고’(KBS-TV, 스페샬, 2008-12-28)를 보기 시작할 때에, 시각장애인 니콜슨씨의 모습이 나오자 시각장애인의 이야기인가 했다. 하지만 곧, 입양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나의 반응은 역시 또 무뎌지고 말았다. ‘으응, 또 그렇고 그런 입양 이야기구나’라고 말이다. 하지만 곧 나의 그런 반응은 한없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니콜슨씨가 입양되었다거나, 니콜슨씨의 아이들을 입양한 것이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시각장애인 니콜슨씨가 한국의 아이들을 입양한 것이었다. 그것도 4명이나! 그것도 4명 모두 니콜슨씨와 같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그 아이들 중 한명-새라는 정신지체(자폐증)를 겪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저러한 일을 왜 하는 것일까? 자기 몸을 가누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어떻게 4명이나 되는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계속 내 머리를 맴도는 가운데, 충격 반 기대 반으로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충격과 궁금증이 컸던 탓인지, 더 이상 입양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방송에 집중하게 되었다.
방송의 전반부에는 니콜슨씨가 그동안 입양을 해온 과정,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킴, 마크, 엘렌, 새라. 이들은 이제 니콜슨씨 부부의 보살핌 속에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의 나열보다 내게 계속해서 이상하게 다가오는 어떠한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니콜슨씨 가족의 이상할 정도로 밝은 삶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장애라는 것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더 없이 평온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평온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방송을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의 보여준 가족의 모습은 과연 이것이 가족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방송 중반부에 드디어 나의 커다란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물음이 해결되는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어느 한인 선교회에 초청된 니콜슨씨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 입양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라는 말이었다. 단 한번도,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을 ‘입양’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나였기에, 그 니콜슨씨의 그 말 한마디는 내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양’이란 것이 무엇인지, 내게 바로 와 닿았다. 더 이상 ‘입양 이야기’가 그저 좋은 일을 하는 남의 이야기로 들려오지 않았다. 나와는 거리가 먼, 나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봐야만 하는 그런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입양이란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나는 입양이란 것을 경험해본 양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역시 나의 아버지시라는 느낌이 확고했다. 도리어, 나를 입양해주셔서 아들같이 돌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더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적셔져 왔다. 기도라도 마구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이러한 사실들을 깨달은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해왔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눈물을 참고 추스르려던 찰나, 엘렌의 ‘나’라는 찬송은 결정타를 날려서, 결국은 잠시 VOD를 멈춰놓았다가 보기까지 하였다.
평소에 ‘입양’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보고 살지는 않았지만, ‘좋은 아버지, 좋은 가정’에 대한 생각은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커다란 인생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다. 오늘 그 좋은 역할 모델을 찾게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사랑은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믿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조건이든지 사랑합니다. 그들을 반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또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자식의 모범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면서 말이죠.’
니콜슨씨 부부는 뭔가 확실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적어도, 크리스쳔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땅의 많은 크리스쳔들이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잘못된 푯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나도 그들 중 하나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늘 배우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하며, 이 사회는 우리에게 배운 것과는 다른 것들을 강요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성공, 자신만의 안위,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는 너무도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취업, 결혼, 학교, 외모 등등 수많은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도리어 니콜슨씨 부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일까.
방송을 보는 내내, 부끄럽기 짝이 없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적어도 ‘입양 이야기’가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내가 목표로 하던 좋은 가정, 좋은 아버지 상을 찾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동안, 식어버린 죽같이 밋밋했던 주님에 대한 사랑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끔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니콜슨씨 부부의 인터뷰 내용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2009년 나의 삶을 좌우할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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