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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입양, 하나님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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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10-09 15:26 조회5,9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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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 2005.9-10>
*스팸댓글 대문에 옮겼슴


                                하나님의 입양, 하나님의 자녀

                                                                                        황수섭

‘보건복지통계연보 2004’(2005.7.)에 따르면 2001년부터 4년 동안의 국내입양은 1,770명, 1,694명, 1,564명, 1,641명으로 여전히 해외입양 2,436명, 2,365명, 2,287명, 2,258명 보다 저조하며, 기아, 미혼모 아동 미아 등으로 발생하는 요보호아동은 12,086명, 10,057명, 10,222명, 9,393명과 대조하면 미약하기 그지 없다. 또한 미국으로 입양 간 우리의 아이는 2002년 1,779명, 2003년 1,790명, 2004년도에는 1,716명이며, 특히 2004년에는 중국 7,044명, 러시아 5,865명, 과테말라 3,264명 다음으로 한국 순으로 나타났고, 장애아 입양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약 3만 3천명의 장애아들이 외국으로 보내어졌고 국내에는 약 160명 정도만 입양되었으니 요보호 아동(고아)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인 입양아는 20만 명으로 추산한다. 미국과 캐나다뿐만 아니라 유럽에는 각국별(화란, 독일,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등)로 입양인들의 모임이 있고 그 모임들은 교제하며 정보를 교환하면서 어머니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입양의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 사회는 자기 몸을 통해서 낳지 않은 아이를 자기의 가족으로 삼기를 꺼려한다.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와 혈연중심적인 가족관 때문에 대를 잇기 위한 이유가 아니면 입양을 시행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입양에 관해서는 일반 사회나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신원하 교수는 그의 논문 ‘입양과 기독교 신앙-입양의 신학적 토대’에서 “한국교회와 성도의 입양에 대한 태도는 일반사회와 별로 차이가 없어왔다. 교회가 앞장서야 할 이런 운동에 오히려 사회의 요구에 의해 뒤따라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입양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를 보인 이유에 대해서 몇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역시 혈통과 유교 중심적 사회문화의 영향을 들 수 있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에 있어서 혈연중심적인 잘못된 성경이해를 들 수 있고 셋째로는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사랑과 돌봄에 대한 책임에 대한 소홀한 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입양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혈연중심적 가족관이 기독교적 가족관과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언약에 대한 혈통중심적 편견과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비성경적인 오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아가서 교회는 성경이 입양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들을 잘 파악하여서 끄집어내는 신학적인 작업을 해야 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1. 입양은 완전한 가족이 됨.

성경은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면 그 아이가 완전한 가족이 되는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구약에서는 입양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고, 실제로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입양에 관한 제도가 없었고 또 입양이 시행되었다는 기록도 찾기 힘들다. 이유는 구약에서는 자녀가 없는 부부를 위한 일부다처 등 여러 다른 방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던 것 같고(창 15:3). 모세(출 2:10) 및 에스더(에 2:7,15)는 비이스라엘의 법에 따라 양자로 입양되었다.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의 입양된 아들로 여겨졌다(렘 3: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하셨고(출4:22), 피투성이가 되어 버려진 아이를 데려와서 키운 입양아로 이스라엘 백성을 묘사했다(겔16:6-7).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호11:1)이라고 말하면서 입양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다윗 왕가와 맺은 언약에서도 입양이라는 은유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그(다윗의 후손)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삼하7:14). 하나님이 다윗의 왕조를 입양하셨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윗 또한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 아비가 될 것임이라”고 하나님의 입양하심에 대해 재확인한다(대상28:6). 시편 2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아들로 삼으셨음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라고 선언하자, 다윗은 “주는 나의 아버지요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시89:26)고 화답한다.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그의 아들을 삼았기에 다윗이 죽고 난 뒤 하나님이 계속하여 그를 돌보고 키우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구약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들의 관계로, 즉 입양의 이미지로 설명한다.

신약에서는 입양이 바울 서신에서만 발견되며 입양은 종에서 아들로 신분이 변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갈 4:1). 그 당시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던 입양 제도와 깊이 관련된다. 입양에 관한 문맥에서 사용된 롬 8:15, 갈 4:6의 '아바, 아버지!'라는 외침도 양자가 된 종의 인습적인 외침인 듯하다. 헬라 로마 세계에서는 입양아는 친자식이 갖는 권리와 동일한 법적인 지위와 특권을 누렸고, 양부의 재산과 소유를 상속받는 상속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가졌다. 입양된다는 것은 이전의 소속과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소속의 일원이 되어 그 가족이 주는 신분과 권리와 의무를 모두 소유함을 의미했다. 바울은 이런 당시 법적 사회적 제도의 내용을 유추하여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 즉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입양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양자가 된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인이 되는 권리를 갖는다.(롬 8:15)


2. 하나님께 입양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입양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마귀에게서 난”(요 8:44) “마귀의 자식”(행 13:10)이었고,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었다.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갈 4:4-6)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 1:5)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되셨다.(롬 8:2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33문답에서는,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고, 그리고 친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은혜로 입양된 자녀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소교리문답 제 34문답에서는 “양자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행위로써(요일3:1) 이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중에 들게 하시며,(요1:12, 사44:2) 그 모든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롬8:17).”라고 고백하고 가르쳐 준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 12장 ‘양자에 관하여’에서는 좀더 상세하게 고백함.)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행위로서 우리를 입양하시어서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그 입양행위는 오늘 그리스도인이 요보호 아동(고아)을 자녀로 삼아 한가족이 되는 입양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시사점과 유용한 패러다임이 된다.


3. 언약 중심적인 가족관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족관은 혈연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시면서 가족 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며 사랑의 공동체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적 가족관은 ‘언약 중심적’이다.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독립하여 사랑하며 서로 헌신하기로 서약한 후 하나가 되어 작은 천국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가 친자녀이든 양자녀이든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귀한 선물이다. 이 가정을 통해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이러한 혈연 중심적 가정관을 극복하고 언약 중심적 가정관을 확립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4. 지극히 작은 자인 요보호 아동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요보호 아동(고아)을 한 가족으로 받아 들여야 할 입양의 의무가 있다고 율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고대 근동사회나 신약의 배경인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입양의 일차적인 목적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 가계를 계승하고 땅과 재산을 보호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가정적, 경제적 이유가 주된 것이었기 때문에 요보호 아동(고아)을 사랑과 돌봄의 차원에서 전개하고자 하는 현재의 입양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성경시대의 사회에서 시행되었던 입양은 현대 기독교인이 강조하는 입양행위와는 성격이 다르기에 그것을 현재에 규범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보호 아동(고아)을 비롯한 자기 힘으로 자기를 지탱할 수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돌봐 주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대표적인 계층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이다. 그들은 생활력이 없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계층들에게 관심을 베풀 것을 명령하신다. 신명기 2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 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먹을 수 있도록 곡식단을 남겨 두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의 십일조도 말씀하셨다(신14:28-29) 시편 68편 5절에서는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하였다.
요보호 아동(고아)을 긍휼히 여기고 보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고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아와 과부를 대해야 할 태도에 중요한 지침이 된다. 이는 신약의 야고보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즉 참된 종교라는 것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약1:27)이라는 가르침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자들은 고아를 보살피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요보호 아동(고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약하고 소외되기 쉬운 계층이다.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약자들인 요보호 아동(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입양하여 가정에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다.


5. 기독교 윤리와 입양

요보 아동(고아)을 입양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회적으로 또는 정기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돕는 것과는 매우 다른 차원이다. 입양은 가족의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다. 자신과 그 가족이 그 아이에게 보일 반응에 대해서, 입양한 아이의 인생에 대해서도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사랑이며 이 사랑은 약한 자를 섬기는 희생과 자비이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사랑과 자비의 삶을 요구하신다. 엡 5:1에서는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셨고, 눅 6:36에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하셨다. 말씀을 순종하면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입양되어 사랑의 빚진 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그 사랑으로 양육할 부모가 필요한 요보호 아동(고아)을 입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일이다.


6. 맺으면서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으로 요보호 아동을 모두 돌보지 못하여 시작한 입양이 2만불 시대를 외치는 지금에도 계속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의 원인이 입양의 인식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께 입양되어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고 신앙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가족애를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입양에 대한 생각을 바로 가져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러가지 종류의 삶 가운데 입양도 있다. 입양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족관을 가지고 요보호 아동(고아)를 가족으로 받아 들이는 입양을 시행하여 사랑의 사회를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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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권
58.235.78.43  귀한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프린트해서 참조합니다.^^(내성교회 김경권 목사) 2005-10-21 09:21:15
 
서정원
211.181.71.155  목사님.. 정원자매입니다..평안하시죠?
이 글 웹진'컴퓨터와 선교' 16호(11.1일 발간) 세상 속으로 코너에 출저 밝히고 올려도 될런지요?^^ 2005-10-27 10:40:38
 
운영자
61.110.136.137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원 자매님 위의 글은 장애인복지 기관지인 축복의 통로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대로 옮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짜든지 형편에 맞게 쓰시면 좋겠습니다 2005-11-01 21:32:15
 
박선준
124.199.62.56  목사님! 입양을 계획하며, 입양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는 신학생입니다. 목사님을 간접적으로 뵙지만 뵐때 마다 존경스럽고 감사하고, 계획하고 있는 입양을 꼭 실천해서 목사님이 느끼시는 행복 저도 느껴보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샬롬!! 2006-11-07 23: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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