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학보-그리스도인의 입양- 또 다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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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6-03-25 07:22 조회6,7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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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입양- 또 다른 행복
황수섭 목사(고신 의대 교목, 호산나교회 입양담당)
1997년 12월 중순. TV방송의 입양특집에서 “지금 저 보이는 쌍둥이 아들은 키워 줄 부모가 필요합니다.”라는 짧은 멘트에서 시작된 입양의 구체적인 기대와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나는 ‘아름 다운’(당시 초등학교 6, 5학년이던 딸) 아빠에서 ‘아름 다운 대한 민국’(현재 대학 3, 2학년, 초등 4학년)의 아빠(國父?)가 되었다. 입양가족이 누리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입양의 행복을 알리는 메신저가 되어 여러 교회에서 입양의 간증 설교를 하고 있다. 반응은 다양하다. 반응들을 분석해 보면 입양은 우리들에게 생소한 주제이며 부정적인 편견이 많다는 것과 아울러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와 혈연중심적인 가족관 때문에 자기 몸을 통해서 낳지 않은 아이를 가족으로 삼기를 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입양은 우리 사회 문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해외입양은 살만한 지금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2001년부터 4년 동안의 국내입양은 1,770명, 1,694명, 1,564명, 1,641명으로 여전히 해외입양 2,436명, 2,365명, 2,287명, 2,258명 보다 저조하다.
국내 입양 활성화는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과제일 뿐 아니라 시대적 사명인데 우리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 만큼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국내입양 활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또 다른 행복임을 알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입양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1. 입양은 가족이 되는 또 다른 통로.
성경은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양하면 그 아이가 완전한 가족이 되는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구약에서는 입양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지만 모세(출 2:10)과 에스더(에 2:7, 15)는 입양되었다. 구약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들의 관계로, 즉 입양의 이미지로 설명하는데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의 입양된 아들로 여겨졌고(렘 3:19, 겔 16:6-7).
신약에서는 입양은 종에서 아들로 신분이 변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갈 4:1). 당시 법적 사회적 제도의 내용을 유추하여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 즉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입양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께 입양된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인이 되는 권리를 갖는다.(롬 8:15)
2. 하나님께 입양된 그리스도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마귀에게서 난”(요 8:44) “마귀의 자식”(행 13:10)이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었다.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갈 4:4-6)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 1:5)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되셨다.(롬 8:2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33문답에서는,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고, 그리고 친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은혜로 입양된 자녀이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 34문답,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 12장 ‘양자에 관하여’ 참고)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행위로서 우리를 입양하셔서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입양은 현대 그리스도인이 요보호 아동(고아)을 자녀로 삼아 한가족이 되는 입양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시사점과 유용한 패러다임이 된다.
3. 언약 중심적인 가족관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족관은 혈연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시면서 가족 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며 사랑의 공동체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적 가족관은 ‘언약 중심적’이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가 친자녀이든 양자녀이든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귀한 선물이다. 이 가정을 통해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이러한 혈연 중심적 가정관을 극복하고 언약 중심적 가정관을 확립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4. 지극히 작은 자인 요보호 아동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입양의 의무가 있다고 율법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보호 아동(고아)을 비롯한 약자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돌봐 주기를 요구한다.
성경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대표적인 계층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이다. 그들은 생활력이 없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계층들에게 관심을 베풀 것을 명령하신다(신 24, 14) 시편 68편 5절에서는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약1:27)이라는 가르침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자들은 고아를 보살피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약한 자를 섬기는 희생과 사랑과 자비의 삶을 요구하신다.(엡 5:1, 눅 6:36) 말씀을 순종하면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입양되어 사랑의 빚진 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그 사랑으로 양육할 부모가 필요한 요보호 아동(고아)을 입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일이다.
5. 교회와 입양
교회 강단에서 입양이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과제임을 선포하여 하나님께 입양된 그리스도인이 입양의 행복을 누리게 해야 하며 교회는 입양가족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입양 간증 설교자로서 기억에 남는 몇분이 있다. 호산나교회 최홍준 목사님은 6년전 입양 간증 설교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 시간에 10세에 큰 아버지집으로 ‘양자’로 가신 당신도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면서 그 순간부터 온 교우들에게 입양은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며, 교회의 입양목회는 교회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근래에는 입양을 통하여 손자를 안으셨고 교회 내에 많은 입양가족들이 있을 뿐 아니라 입양지원센타역할을 하고 있다. 분당샘물교회에서 몇가정이 입양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입양가정을 만난 적이 있었다. 동희 어머니는 5여년 전 입양설교를 하는 주일에 식사봉사 당번이어서 교회 주방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입양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리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껴 결국 칼에 손까지 다쳤다고 하였다. 또 다른 교회에서는 “60년 교회 출석했지만 입양 설교 처음 들었습니다. 좀 일찍 들었다면 나도 입양하여 남다른 행복을 누리겠는데 아쉽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인 분을 여럿 만난 적이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입양이 활성화되고, 사회 문제의 하나인 입양의 문제를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해결하여 아이는 믿음의 가정을 만나고 엄마 아빠는 아이를 얻는 행복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고신대학보 200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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