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 돌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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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5-04-07 08:45 조회5,9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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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 돌보는 사회.
‘정승 말 죽은 데는 가도 정승 죽은 데는 안 간다’는 말처럼 사람은 힘있고 지위 높은 사람을 가까이 하려고 하고 심지어 권력있는 사람에게는 아첨도 서슴치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외되고 힘없고 약하고 낮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이스라엘백성에게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출 23:9)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는 분이시라(신 10:18)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재림과 심판의 때에 오른편 사람들에게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과 주님께 한 것을 동일시하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축소 지향적인 묘사이다. ‘작은 자’를 ‘지극히’라는 단어로 더 축소하여 강조하며 ‘하나’라는 최소 단위의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다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극한 대비를 이뤄 ‘가장 작은 자’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가장 큰 자’에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은 힘있고 돈있고 유식하고 건강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지극히 큰자 여럿에게 몰려가지만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셨다.(마 14:14, 9:35-36)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를 귀히 여기시는 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가장 존귀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그 영을 불어 넣어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6일만에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창조하시고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 같다. 아름답고 멋진 이 세상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며, 성경 66권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말씀하시려고 하시는 내용도 결국은 '하나님이 사람를 귀하게 여기셔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들은 20,000$ 시대를 외치는 이 시대의 우리 주변에도 많다. 의식주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질병과 억울한 누명과 과중한 채무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어려운 사람들, 외롭게 혼자 사시는 연로한 어른신들, 해체 가정의 어린 아이들, 키워 줄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입양원의 아이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미혼모들... 이 모든 사람이 지극히 작은 하나이다.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 줘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왼편 사람들이 저주 받은 이유는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남에게 비록 악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소돔의 죄악에 대해서 말하는 중에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16:49)라고 지적하였다.
우리들의 관심을 나에게서 타인으로 나의 가족에게서 이웃에게로 돌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를 적극적으로 찾자.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제공해 주자. 그럴 때 주님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신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황수섭/ 목사, 호산나교회 입양담당, 고신의대 교목]
e-크리스챤신문 20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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