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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 입양과 입양아 중심의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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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6-08-03 15:10 조회6,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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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 입양과 입양아 중심의 입양

황수섭(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부산에서 살고 있는 아름 다운 대한 민국의 아빠)

97년 12월 TV의 특집방송을 통해서 아내가 본 입양원의 쌍둥이 아들을 98년 1월에 입양한 후 나의 생활에는 입양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이 등장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두딸의 모범적인 아빠(?)는 좋은 입양 아빠가 되기 위해서 입양 가족들을 만났는데 만남을 거듭하면서 입양원에서 키워 줄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필요 즉 가정을 찾아 주는 국내입양활성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입양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진 중요한 생각은 입양은 낳아 준 부모와 헤어져서 가정이 필요하게 된 아이가 입양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입양 아동의 육체적 심리적인 모든 면을 배려해야 하며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는 영아시기 뿐 아니라 청소년시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 까지도 행복을 누리도록 최선의 환경과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이 공의이며 선이라고 가르치니 입양아를 중심에 둔 입양이야말로 성경이 가르치는 고아(요보호 아동)을 위한 입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부에서 국내입양활성화를 위해서 정책을 수립했다. 정부가 나서서 입양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입양되어야 할 아이가 태어난 이땅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가정을 찾아 준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독신자도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정책은 입양 대상아동이 그 중심에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현행법(민법)으로도 독신자 입양이 가능하고, 앙드레김 같은 분은 독신자이지만 아들을 입양하여 잘 키웠고, 입양은 아니더라도 한부모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잘 자라기도 한다. 또한 독신자 입양을 찬성하는 분도 많고 희망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고, 입양희망 독신자들이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납득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독신자 입양 허용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시행하면 좋겠다.

독신자 입양을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독신자가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능력의 유무가 기준이 아니라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아이의 마음 깊은 마음까지도 헤아려 보자는 의도 때문이다.
입양되어 가정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낳은 부모로부터 양육을 포기 당하였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픔이 있다. 그 상처는 성장과정에서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 어리면 어린대로 장성하면 장성한대로 상실감과 애도의 기간이 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 상실감은 큰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하고, 고독이나 환희의 순간과 결혼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는 막연한 그리움으로 표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상처를 가지고 입양 대상 아동이기 때문에 최고의 가정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낳은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것이 자연스럽고 최적의 조건이지만 생부모와 이별한 입양대상아동은 차선의 좋은 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라고 부를 대상이 있어야 하고 부모의 품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우선적일 것이다.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 가셨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철이 들면서 아니 골목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엄마가 있는 동무들이었다. 인자하신 아버지와 형님 누님이 있었지만 때로는 엄마라고 크게 부르고 싶었고 엄마 품에 안겨 목놓아 울고 싶었지만 엄마 없는 설움과 그리움 때문에 석양의 처마밑에서 때로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으로 아이가 자랄 우리 사회는 보수적인 가족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2000년에 14%(미혼 10.2%, 이혼 3.9%)이던 독신가구가 2005년에는 15.9%(미혼 10.8%, 이혼 5.1%)로 늘어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뀐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아직은 보수적인 가족관이 뿌리 깊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입양아동은 입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편견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 한부모에게서 성장하고 있다는 편견을 또 이겨내야 하니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지레 가슴이 아프다.

독신자 입양을 찬성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입양대상아동의 생부모 마음 때문이다. 입양대상아동의 대부분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미혼모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출산을 했고 양육을 포기했으나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은 여느 부모들과 똑같다. 아이의 장래를 궁금해 하는 미혼모들은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를 바라는데 아이가 독신자에게 입양된다면 얼마나 불안해 하고 염려할까. 미혼모의 입장에서 독신자 입양 허용을 재고한다면 좋겠다.

입양은 입양아동, 입양가정, 생부모 이렇게 3대축이 있는데 독신자 입양은 입양가정에 치우친 정책이 아닌가 생각되어 아쉽다.


아동 중심의 국내 입양활성화를 위해서는 굳이 독신자 입양 허용 정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입양 대상아동 수도 줄이면서 아동이 생부모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미혼모(부)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정책을 더 개발하면 좋겠다. 미혼모(부) 가운데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였지만 양육을 희망하는 엄마(아빠)들이 있다. 그들이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능력이나 편견 속에서 힘들므로 자활 직업 교육 지원도 하고 일자리도 제공한다면 어린 생명에게는 생모(부)의 품에서 자라니 좋고 사회적으로는 입양 대상아동이 줄기 때문에 좋을 것 같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를 대할 때 정책 입안자나 실행자나 입양가정은 신중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 순간의 결정이 한 생명의 긴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입양활성화를 위해서는 힘들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정이 필요한 아동을 위하여 인내하면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동이기 때문에 정부나 사회는 최고의 가정을 찾아 주고 환경을 제공하여 생채기가 덧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등의 아동 중심의 입양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97년 12월 초순, 지금 저 보이는 쌍둥이 아이는 돌이 다 되었는데 키워 줄 부모가 필요하다는 짧은 멘트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입양은 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방송 녹화 영상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엄마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젖꼭지도 빨아 보지 못하고 보낸 입양원의 13개월, 사랑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시간마다 바뀌는 얼굴들, 핏덩이 몸으로는 기억이 불가능한 수많은 눈길들로 겪었을 상실감 등 생각하면 항상 입양부모의 막중한 역할을 상기한다.

이제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쌍둥이 아들을 입양할 당시 나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입양한 아들의 행복한 인생과 영생 복락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리라고 각오를 했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생명인 아들, 쌍둥이 아들의 아픔을 싸메어 주는 엄마 아빠로 오랫동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겠노라고 다시 다짐하면서 입양 당시 감명깊게 읽었던 시를 꺼내어 읽어 본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다이아나 루먼스 )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 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 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 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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