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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반대’에 반대하는 이유/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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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5-03-14 11:07 조회5,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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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해외입양 반대’에 반대하는 이유/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다. 해외연수를 위해 1년간 미국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둘째 아이가 어느 날 말하기를 독서 시간에 자기를 도우러 오는 5학년 누나가 있는데 한국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임교사를 만나서 물어 보니 미국 학교는 학생들에게 남을 돕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상급생이 하급생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데, 마침 한국인 입양아가 있어서 일부러 우리 아이를 맡도록 배려했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로렌이었고, 우리는 그 아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 아이들이 로렌과 노는 동안 우리는 같이 온 백인 양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로렌의 엄마는 남편과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도 만 두 살 된 로렌을 입양했다고 했다.

로렌의 엄마는 로렌에게 ‘너는 한국인’이라고 알려주고, 한국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했다. 보스턴 지역에는 한국인 입양아 부모들을 위해 한국식 음식과 풍습을 소개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곳에 로렌을 데리고 가 한국음식도 먹고, 한국의 공예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영어로 씌어진 로렌의 한국 이름을 가지고 왔는데 ‘Jung Soon Kim’이라고 씌어 있었다. 한글로 ‘김정순’하고 적어주었더니 그 이름을 꼭 껴안고 “이 이름이 바로 진짜 우리 딸 아이의 이름이냐?”하면서 감격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로렌은 다른 평균적인 미국 아이들보다도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있었다. 무용과 피아노를 배우고, 전직교사인 엄마의 지도 아래 책도 많이 읽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로렌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입양에 대한 태도를 단편적이나마 알게 되었는데, 우선 이들은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아이에게도 ‘너는 입양되었다.’는 것을 당당히 밝힌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입양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입양아가 외국인일 때는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과 언어를 가르쳐주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인종도 다른 입양아들을 위해 그렇게 정성을 바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입양을 받으려면 재산 정도나 품성에 대해 꽤 엄격하게 심사받아야 하고 적지 않은 돈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얼까? 이들은 아이를 키우고 사회에 내보내는 기쁨을 가질 뿐이다. 내가 키워주었으니까 나를 위해 뭘 해달라는 것도 없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의 혈족주의에 물들어 있는 나에게는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로렌이 미국에 입양을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영아원 같은 시설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그러한 시설에서 자란다는 것은 자신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극성스러운 부모들은 자녀들이 고아와 노는 것조차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으며, 훗날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더 서러운 편견에 시달리게 된다.

국내 입양의 기회도 워낙 없지만 혹시 운 좋게 입양이 된다 해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어느 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서로들 쉬쉬하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 어릴 때나 청소년 시기에 정서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차라리 해외에 입양되어 나가면 편견이 적은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고,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인데 ‘고아 수출국’으로 오명을 남기고 있다고 해외 입양을 반대한다. 그러나 자신이 그들을 입양해서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다면 그 아이들이 겪게 될 고통의 무게도 잘 모르면서 국가체면만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입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로렌의 엄마한테서 로렌이 지금도 가끔 지구본을 돌려보며 한국은 몇 시냐고 묻는다고 편지가 왔다. 언젠가 로렌의 결혼식 청첩장이 우리 집으로 날아온다면 비록 우리가 그곳까지 가진 못하더라도 축하한다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축전이라도 쳐줄 생각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2005.3.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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