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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야기)- 솔라 스크립투라 원리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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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41회 작성일 15-10-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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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루터 선생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는 곳에는 반드시 영적 전투가 뒤따릅니다. 취리히를 중심으로 츠빙글리 선생의 개혁적인 설교의 목소리가 주변 여러 스위스 주(캔톤)들에서 반향을 얻게 되자, 천주교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다섯 주들이 동맹을 맺어 종교개혁을 저지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루터를 이단으로 몰아세워 결국 독일제국의 법의 보호를 박탈당하게 만들었던 잉골쉬타트의 요하네스 엑크 박사를 초청하여, 츠빙글리 역시 그 비텐베르크의 개혁자를 추종하는 이단자라고 고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스위스 연방에서 츠빙글리의 영향력을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루터를 이겼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던 에크는 적극적으로 그 회담에 응하였고, 츠빙글리 역시 기꺼이 그와의 신학논쟁에 참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취리히 논쟁들과는 달리, 신학적 토론에서 옳고 그름을 가늠할 권위를 확정하는 문제가 회담의 성사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츠빙글리는 일관되게 오직 성경만인 모든 인간을 판단할 유일한 권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반면에, 에크는 전문가들의 위원회를 조직하여 토론의 성패를 판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숙련된 전문가들을 통해서만 서책들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삼기를 꺼려하는 에크의 태도는 이미 라이프치히 토론에서 루터에 의하여 날카롭게 지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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